11월 24일 월요일 밤, 홍콩 증시는 알리바바 호재에 들썩였습니다. 중국 전자상거래 거인 알리바바가 공개한 3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거든요. 매출 2,478억 위안(약 51조 원), 증가율 15%. 숫자로만 보면 소박해 보이지만, 그 뒤에 감춰진 전략은 중국 기술 패권 경쟁의 판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습니다.

이 실적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빠른 배송(인스턴트 커머스) 사업이 예상 이상으로 효율성을 찾았다는 것. 지난 4월 출시 이후 타오바오 앱 월간 활성사용자가 200% 증가했으니까요. 둘째, AI 클라우드 부문이 전년 대비 34% 성장하면서 알리바바를 단순한 쇼핑 플랫폼에서 AI 인프라 회사로 변신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AI 관련 매출은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알리바바는 이제 소비자의 지갑이 아니라 기업의 연산 수요에 베팅하는 회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더 극적인 건 투자 규모입니다. 알리바바는 지난 12개월간 AI와 클라우드 인프라에만 1,200억 위안(약 24조 원)을 쏟아부었습니다. CEO 우용밍(에디 우)은 “고객 수요가 워낙 강해서 우리의 배포 속도를 따라잡질 못한다”고 말했어요. 이 말은 중국 기업들이 AI 도입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알리바바가 그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펌프’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이 움직임은 중국 AI 생태계 전체의 축소판입니다. 같은 주 초 문샷AI(스타트업)가 출시한 키미 모델은 오픈AI의 챗GPT 대비 비용을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고, 일부 벤치마크에서 GPT-5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바이두는 어니 5.0을 준비 중이고, 바이트댄스는 더우바오로 1억 5,000만 사용자 확보에 성공했어요. 더우쇼핑(이커머스), 메이투안(배달), 징둥(물류)까지 모두 빠른배송 사업에 총 몇백억 위안을 투입하며 배송 속도와 가격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중국 기업들의 과격한 자본 투자는 ‘거품’처럼 보입니다. 단기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AI와 배송 인프라에 베팅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지만 비즈니스 논리로 보면 답은 명확합니다. 첫째, 중국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입니다. 2025년 GDP 성장률 5% 목표를 달성하려면 소비를 살려야 하는데, 빠른배송과 보조금이 소비 심리를 깨우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둘째, 미중 기술 경쟁입니다. 칩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중국 기업들은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을 개발해 비용 우위를 확보하는 게 생존 전략이에요. 셋째, 플랫폼 통합입니다. 배송 데이터, 거래 데이터, 사용자 행동 데이터가 쌓이면 AI 학습을 위한 ‘원유’가 됩니다. 알리바바는 이 데이터를 팔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수익화하려는 거죠.

흥미로운 건 시장의 반응입니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AI 주식이 거품이 아니라 저평가 상태”라고 평가했어요. 미국 상위 10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25조 달러인 반면, 중국은 2.5조 달러에 불과합니다. 시장 점유율도 미국 40% 대비 중국 15% 수준이에요. 그러니까 중국 기업들이 지금 AI에 투자하는 건 “3년 뒤 글로벌 시장에서 반팔을 노리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단기 이익 포기는 중장기 시장 선점 게임입니다.

한국 기업에 주는 함의도 명확합니다. 중국 배송 시장은 이미 수익성 게임이 아닙니다. 빠른배송 가격이 계속 내려갈 테니까요. 대신 배송 인프라, AI 클라우드 서비스, 반도체 같은 B2B 산업 솔루션이 기회입니다.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이 1,200억 위안을 투자하는 분야에 우리의 물류 자동화, 반도체 소재, 클라우드 보안 같은 기술을 팔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중국 소비 시장의 쇠락은 우리에게 비극이지만, 중국의 AI 경쟁은 새로운 공급처가 될 수 있습니다.

11월 26일 수요일, 알리바바는 AI 챗봇 큐원을 출시했어요. 일주일 만에 1,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습니다. 이 숫자가 다음주 중국 테크 시장의 화두가 될 겁니다. 왜냐하면 AI 경쟁은 이제 ‘누가 더 나은 모델을 만드는가’에서 ‘누가 먼저 수익화하는가’로 진화했거든요. 알리바바가 보여준 이 일주일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과 다른 방식으로 AI 미래를 만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